[삶의 뜨락에서] 순진한 그림이 좋다
얼마 전에 요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옆방에 계신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기가 그린 그림도 보여주었다. 개성이 고향이라고 하시며 살았던 마을의 모습을 손이 가는 대로 기억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오밀조밀 그려놓아 가고 싶은 고향의 추억이 살아나고 있었다. 매일 기운차게 떠오르던 앞산 위에 햇님도 실감 나게 그려져 있었다. 여러 가지 기법을 가르쳐 주는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당연히 자신이 그리고 싶은대로 그려 놓아 아이들 그림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순박한 동시를 읽는 것 같은 감동이 마음에 스며들고 있다. 한국의 지방 문화를 돌아보는 기행문적 화면을 보면 그곳 문화교실에서 꽤 나이 든 분들이 열심히 그림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그림 공부가 무슨 화가로서 큰 성공을 바란다든가 그림을 높은 가격에 팔아보겠다는 기대가 앞서는 것이 아니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그림 한장 그려내는 것이 마냥 즐거운 분위기다. 물론 그려 놓은 작품이 번듯한 화풍을 뽐내는 그런 그림은 아니지만 보는 이를 역시 즐겁게 만들어주는 감동이 있다. 자신의 느낌대로 붓이 가다 보니 때로는 파격적인 그림이 만들어져 깜짝 놀라게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특별한 색깔과 선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이 아이들의 그림과 잘 알려진 대가들이 말년에 모두 내려놓고 그린 약간 유치해 보이는듯한 어떤 그림들과 만나는 지점이 있는 듯하여 재미있는 흥미를 갖게 한다. 민화라 불리는 그림들이 있다. 한국의 조선 시대 민화는 오히려 소재와 표현 방법이 정통이라 불리는 그림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 용도도 단지 그림 솜씨 뽐낸다거나 품위 있는 장식을 넘어서 복을 기원하거나 화를 물리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어떤 규범에도 구속되지 않고 그리는 사람 마음대로 그려놓아 오히려 많은 사람, 체면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그림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를 그려도 산중 왕의 엄숙한 얼굴도 있지만 좀 바보스러워 보이는 웃음 나는 얼굴 그림이 더 많다. 이름 모를 풀벌레가 화려하게 자리 잡기도 하고 싱싱한 물고기가 묘한 자세로 물방울 튕기며 요동치기도 하여 잘 차린 밥상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새들은 자기 느낌대로 커다란 머리로 노래하고 화단의 꽃들은 원색의 꽃잎을 마구 날리며 즐거운 잔칫날 분위를 띄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까치와 표범이 소나무 아래에서 합창하며 팍팍한 삶을 위로하여 주기도 한다. 그렇게 민화라는 그림은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붓질로 그림의 세계를 확장하고 꾸미지 않은 백성의 마음을 드러낸다. 요즈음 많이 보이는 노래경연대회를 대해보면 박자나 창법이나 그런 것에 잘 맞게 틀림없이 부르는 것보다 자신이 가진 개성을 꾸밈없이 보기 좋게 드러내 보여 즐겁게 진심 어린 어떤 감성을 전하여 주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이 어린 친구들의 순수한 느낌 주는 노래가 환영받기도 한다. 명망 있는 신학자가 길에 넘어진 할머니를 도와주었을 때 그 할머니의 순전한 믿음이 담긴 한마디에 잊었던 신을 향한 사람을, 이웃을 향한 사랑을 순식간에 되살리고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복잡하거나 꾸미면 많은 이론이나 어렵게 늘어놓은 설명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근원에 가까이 있는 단순하고 쉬운 한 마디에 드러나고 있어 그것을 찾는 이에게 뜨겁게 다가온다. 할머니의 그림이, 아이들의 동시가, 어떤 화가가 말년에 그린 바보 그림이, 노학자의 짧은 탄식에 사람들은 더 깊이 더 많은 감동을 한다. 골목길을 걷다가 만나는 담벼락에 그려진 동네 아주머니의 서툰 붓질의 난해한 그림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도 꾸미지 않은 순진한 감성이 묻은 솜씨인 까닭이다. 삐뚤빼뚤하고 무심한듯한 선과 색깔로 그려진 그림이 스스럼없이 다가오면 편안하여지고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순진 얼굴 그림 바보 그림 아이들 그림